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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루

서산여행: 해미읍성, 간월암

by 한가롬 2025. 1. 31.

2025.1.27.
최고/최저 기온 4° /-3° 
흐림, 눈

 

명절 연휴를 맞아 시간을 내어 서산으로 향했다. 이전에도 바이크를 타고 서산을 찾은 적이 있지만, 그때는 주로 라이딩에 집중하느라 곳곳을 세세히 둘러보지는 못했다. 이번에 다시 서산을 찾은 이유는 우선 소도시를 좋아하기도 하고, 서산이 정갈하게 가꿔진 역사적인 도시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해미읍성을 방문했다. 최근 읽고 있는 '한국인의 탄생'에서 산성에 관한 글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특히 한국의 성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어 이를 떠올리며 유심히 살펴보고 싶었다. 해미읍성은 조선 시대 지방 군사 방위를 담당했던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된 군사 및 행정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 ‘남쪽을 진압하는 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말 그대로 해미읍성은 처음 방문했다. 정문까지는 와본 적이 있지만 성 안으로 들어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 안쪽에는 군사시설과 관련된 유물이 남아 있다. 모든 성이 병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유물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보기 어렵다.

 

 

산책하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고 차가웠다. 날이 좋았다면 광장에 놓인 나무들의 형태에도 감탄하며 천천히 둘러보았겠지만 추위 탓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대신 선사진 후감상을 위해 사진만큼은 열심히 찍었다.

 

 

이 멋스러운 회화나무는 과거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한 흔적이 아직도 나무에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해미읍성의 또 다른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특히 심했던 곳으로, 수많은 순교자가 생긴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성곽 내의 고즈넉한 정취와 풍경을 감상하다가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민가를 비롯한 다양한 시설들이 재현되어 있었다. 특히 옥사는 상당히 공들여 복원해 놓았으며 형벌 체험도 가능했다.

 

 

아녀자 폭행범을 찾는 수배령. 하지만 이런 그림만으로 과연 범인을 잡을 수 있었을까?

 

 

성곽 내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는 동헌은 해미읍성에서 행정과 사법 업무를 담당했던 중심 관아 건물이다. 

 

 

동헌은 지방 수령이 집무를 보던 공간으로, 해미읍성에서는 병마절도사나 읍사가 주요 행정 업무를 수행하던 곳이었다. 굳이 설명을 찾아 읽지 않아도 공간 내 상황이 잘 재현되어 있어 한눈에 이해하기 쉬웠다.

 

 

시설 외에도 둘러볼 곳들이 많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 주요 건물만 빠르게 훑었다. 그래도 산성을 둘러싼 산세의 형태가 워낙 멋스러워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다른 곳보다 좀 더 오래 눈에 담았다. 오래 눈길을 준 만큼 이 풍경은 내 기억 속에 더욱 깊이 남을 것 같다.

 

 

 


 

해미읍성을 둘러본 뒤 간월암으로 이동했다. 간월암은 서산시 간월도 앞바다에 자리한 작은 암자로, 바닷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육지와 연결되는 독특한 지형을 갖고 있다. 방문하려면 물때를 잘 맞춰야 하지만 별다른 정보 없이 찾아갔음에도 운 좋게 적절한 시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월암, '달을 바라보는 암자'라는 뜻으로 내가 찾아갔을 때는 해가 암자 위에 떠 있었지만 이곳에 달이 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꽤나 운치 있을 것 같다. 서해에 자리한 만큼 해가지는 풍경또한 일품이겠지.

 

 

물이 굉장히 맑았다. 그동안 서해 하면 검은 갯벌이 펼쳐진 풍경을 떠올렸는데 예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계단을 올라 절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서 불상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곳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어떤 염원을 담아 소원을 빌었을까.  

 

 

이 나무는 무학대사가 수행하던 중 꽂아 두었던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자랐다는 전설을 지닌 나무로, '무학대사 지팡이 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나무는 앞서 해미읍성에서 고문할 때 쓰였던 나무와 같은 회화나무였다. 하나는 수행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다른 하나는 아픈 역사의 상징으로서 같은 나무가 전혀 다른 의미를 품게 된 것을 보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범종. 불교에서 종소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중생의 번뇌를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굳이 종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번뇌가 사라질 것만 같다.

 

 

절 곳곳을 둘러보았다. 시력이 좋지 않아 복전함 뒤에 있는 불상이 갸루피스를 하고 있는 줄 착각해 순간 갸우뚱했다.

 

 

담장 너머로 펼쳐진 망망대해.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바다를 향해 걸린 소원을 적은 종이를 살펴보았다. 가족의 행복, 건강, 사랑, 합격 등 따뜻한 마음이 담긴 글로 가득했다. 소원지를 보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소원을 적어 걸어두진 않았지만, 단단한 내면을 갖기를 소망했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마그넷을 사는 편인데, 간월암 기념 원목 마그넷은 가격 대비 퀄리티가 만족스럽지 않아 구입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기념으로 하나 살까 고민했지만 결국 내려놓았다.

 

 

간월암 방문 인증샷. 엄청 추운 날씨 탓에 눈만 빼고 온몸을 꽁꽁 싸맸다. 해미읍성 인근 시장에서 만 원 주고 목토시를 구입했는데 당일 한 번 사용하고 어디론가 흘려버렸는지 잊어버렸다. 바이크 탈 때도 쓰려고 했는데 아쉽다.

 

 

만족스러운 서산 여행이었다. 다음에는 바이크를 타고 한 번 더 방문하고 싶다. 시기를 고르자면 늦봄이 가장 좋을 듯하다. 생일 즈음에 다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