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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으로 향한 바이크 투어 본문
202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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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나는 바이크를 탈 때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편이라 여행지가 충북 보은이라는 사실도 당일 직전에야 알게 되었다. 여행지로 생각해둔 곳들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해 보니 모두 보은에 위치해 있었다.
오전 8시 반, 용인에서 진을 만났다. 원래는 진과 함께 MSX125를 타고 투어를 가기로 했지만 나는 마음이 바뀌어 NX500을 타고 나갔다. 진은 배기량이 큰 바이크로 자신에게 맞춰 천천히 달리게 되어 미안해했지만 내 체력을 아끼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알지 못했다.
얼마 전 내린 가을비 이후로 날씨가 급격히 쌀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맑아서 도로 위에는 바이크들이 무척 많았다. 할리군단과 마주쳐서 끊임없이 손인사를 주고받았다.
충북 진천에 있는 휴게소에서 만난 바이크 무리들. 이분들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오랜만에 충청도권에서 라이딩을 하는 터라 그들이 가는 곳이 궁금했다.
날씨가 추워진다는 예보를 듣고 옷을 겹겹이 껴입었지만 달릴수록 찬 기운이 몸에 스며들었다. 하늘은 맑고 청명해 날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보은으로 향하는 길, 청주에서 물줄기를 따라 달리는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우리는 달릴 때 페어링을 하지 않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여러 수신호가 있다. 미러에 비친 진도 지금 이 길이 좋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신호대기 중에 진에게 괜찮아 보이는 길이 있으면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하천을 건너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했다. 나는 하천 한가운데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풍경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이런 길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이 같은 곳에서 보았던 여러 풍경들이 떠올랐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에 감흥이 모두 날라가버렸다. 적당히 사진만 찍고 서둘러 이동하자.
첫 번째 목적지인 충북 보은의 삼년산성에 도착했다.
삼년산성은 충북 보은군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성을 쌓는 데 3년이 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확실하지 않다. 삼년산성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이 지역이 백제와 신라 사이의 중요한 경계였던 점을 고려할 때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는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으며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역사적 사실은 여행기를 쓰면서 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삼년산성을 찾은 이유는 그곳의 천혜의 자연 지형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었다. 실제로 마주한 삼년산성은 폭이 넓고 매우 웅장했다. 겹겹이 쌓아올린 돌들을 보며, 당시 투입된 인력의 노고를 떠올리며 진과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성벽을 보며 한국인의 식성, 좀비, 그리고 엔듀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듣고 있었지만 진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어딘가의 세계관으로 이미 멀리 가 있었다.
좀비 이야기를 나눈 후에 먹는 뼈다귀 해장국은 왠지 가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입 먹자마자 몸이 뜨끈해지면서 결국 맛있게 냠냠 먹었다.
식사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이 지역으로 여행지를 선택한 이유는 인근에 속리산 국립공원이 있어 길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예상은 적중했고, 궂은 날씨만 아니었다면 행복감으로 가득 찼을 것 같다.
말티재 전망대에 도착했다. 충북 진천 휴게소에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던 바이크 무리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말티재로 향하기 전, 진은 오늘 바람이 너무 강해 고개를 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미리 찾아본 사진 속 극한의 헤어핀 코스를 보고 나도 겁이 났기에, 코너를 공략하기보다는 전망대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코스로 경로를 수정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너무 아찔했다. 전망대 난간에 헬멧을 올리고 인증샷을 찍으려다가 진과 나는 난간 근처에도 못 갔기에 결국 빠르게 사진만 찍고 내려왔다.
말티재 전망대 근처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커피와 대추 스콘을 주문했다. 커피도 스콘도 그저 그랬지만, 몸을 쉬이며 따뜻하게 녹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평소 단 것을 잘 먹지 않는 나는 담백한 스콘을 잘 먹었는데 진은 내 반응을 보고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 말고는 라이더 친구가 전혀 없는 진에게 다른 사람들과도 교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이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물었고, 나는 "바이크나 라이더 문화에 대한 내 편협한 견해가 너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래서"라고 답했다. 진은 그 말을 듣고 "난 네 그 편협함이 좋아" 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음 목적지가 있었지만, 우리는 빠르게 복귀하기로 했다. 진은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할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고, 나도 다음날 출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달리던 중 날이 어두워졌다. 편의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각자의 도착 경로를 확인했다. 네비게이션 경로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용인의 어느 터널을 달리던 중 뒤를 보니 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언제쯤 헤어진 걸까. 집에 도착하니 진에게서 무사히 귀가했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복귀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진을 보며 원동기로 장거리 투어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이번에도 무리했나 싶어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오늘도 재밌었다!'라는 메시지를 보고 재밌으면 된 거지 하고 넘겼다.
그래, 오늘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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